예술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그 경계를 넘나든다는 핑계로 우리는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걸까? 최근 국제현대무용제(MODAFE)에서 올린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작품의 연출을 보고 나면, 인간의 잔혹함과 오만함에 치가 떨릴 지경입니다.
디지털 자극에 절여진 현대인의 뇌를 고찰하겠다는 거창한 명목을 내세운 이 공연은, 정작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철저하게 유희거리로 짓밟았습니다. 살아있는 낙지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찢어발기더니, 그것도 모자라 더 커다란 문어를 가져와 바닥에 던지고 실제 전자레인지에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 좁고 뜨거운 기계 안에서 고통스럽게 꿈틀거리며 죽어갔을 문어를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 극장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고통의 전시가 자극적인 '도파민'일 뿐이다
안무가와 주최 측은 디지털 중독을 고발하기 위해 이런 파격적인 연출을 했다고 변명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연출 자체가 가장 저급하고 중독적인 '도파민'을 좇는 행태 아닌가요?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방법이 고작 말 못 하는 생명을 고문하고 그 고통을 실시간으로 전시하는 것뿐이었다면, 이는 창작자로서의 무능함을 자백한 꼴이나 다름없습니다.
무대 위에서 생명이 밟히고 찢기는 광경을 돈을 내고 지켜봐야 했던 관객들은 무슨 죄입니까? 오죽하면 공연을 보던 일부 관객들이 큰 충격을 받고 공연 직후 구토까지 했겠습니까. 그것은 예술이 주는 깊은 울림이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지는 생 날것의 폭력을 목격했을 때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혐오감과 불쾌감입니다. 타인의 고통과 생명의 죽음을 이용해 관객에게 억지 충격을 주려는 시도는 예술이 아니라 그저 가학적인 쇼에 불과합니다.
횟집 낙지와 무대 위 문어는 다릅니다
이 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우리가 흔히 먹는 식재료인데 뭐가 문제냐"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완전히 흐리는 궤변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기 위해 생명을 소비할 때는 그 생명의 희생에 감사하며 최소한의 고통으로 빠르게 생을 마감하게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밥 말아 먹은 채, 단지 '시각적 효과'와 '자극'을 위해 생명을 천천히 고문하며 죽어가는 과정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명백한 학대이자 폭력입니다.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소모품으로 여기는 그 비뚤어진 특권 의식이야말로 이 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불행입니다. 동물의 고통에 무감각한 이들이 과연 인간의 내면과 사회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비겁한 방패를 치워라
예술계는 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 뒤로 숨는 걸까요? 표현의 자유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닙니다. 그 어떤 위대한 예술적 목적도 살아있는 생명에게 고통과 공포를 강요할 권리를 주지 않습니다. 타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이 자유의 기본 전제입니다.
비판이 거세지자 주최 측은 부랴부랴 사과문을 올리고 다음 공연부터 해당 장면을 삭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뻔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대처입니다. 리허설을 진행하고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그 수많은 스태프와 전문가들 중 단 한 사람도 이 잔인한 연출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경악스럽습니다.
예술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이토록 잔인한 행동의 면죄부가 되었습니까? 이번 사태는 우리 문화 예술계의 윤리적 수준이 얼마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자극에 눈이 멀어 생명의 존엄성마저 저버리는 예술은 예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오만한 인간이 휘두르는 폭력의 잔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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