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집에 앉아 배달 음식을 먹거나 편의점 도시락을 깔았을 때, 혼잣말로 "잘 먹겠습니다" 하고 두 손을 모으는 분 계신가요?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모습일 겁니다. 보통 우리는 누군가 음식을 차려주었거나 대접해 줄 때 감사의 표시로 인사를 건네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조차 정중하게 두 손을 모으고 "이타다키마스(いただきます)"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예의 바른 습관 정도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이상합니다. 보아줄 사람도 없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그들은 대체 누구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흔히 아는 식사 인사 뒤에 숨겨진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들여다보았습니다.
1. '잘 먹겠습니다'가 아닌 '겸허히 받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타다키마스'를 한국어로 '잘 먹겠습니다'라고 번역합니다. 하지만 이는 어원과 원래 의미를 생각하면 꽤 많은 맥락이 생략된 번역입니다.
이타다키마스의 어원이 되는 동사 '이타다쿠(頂く)'는 단순한 수령의 의미가 아니라, '신분이나 격이 높은 존재로부터 받은 물건을 머리 위로 받들어 올린다'는 뜻을 지닌 최고급 경어입니다. 원래는 귀족이나 무사 계급이 신에게 바쳐진 음식을 하사받거나, 까마득한 윗사람에게 물건을 받을 때 쓰던 궁중 언어였죠.
즉, 이 말의 진짜 뜻은 "저에게 내려주신 생명과 정성을 겸허히 받들어 올립니다"에 가깝습니다. 음식을 내 배를 채우는 '소비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감히 내가 머리 위로 모셔야 할 '하사품'으로 인식하는 문화적 바탕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2. 800만의 신과 식탁 위 '결계'가 만드는 세계관
그렇다면 혼자 있을 때 이 인사는 누구를 향한 것일까요? 바로 '눈앞에 놓인 음식 그 자체', 더 정확히는 '나를 위해 희생된 생명의 정령'입니다.
일본의 고유 신앙에는 세상 모든 만물에 영혼과 신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정령 신앙)이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흔히 '800만의 신'이라 부르는 개념입니다. 쌀알 한 토막, 생선 한 조각, 심지어 모진 비바람을 견디고 식탁에 올라온 채소 한 뿌리에도 저마다의 신령한 생명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일본의 식사 차림을 보면 한국과 달리 젓가락을 식탁과 평행하게 '가로'로 놓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가로로 놓인 젓가락은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신성한 음식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가르는 일종의 경계선(결계) 역할을 합니다.
음식을 먹기 전 두 손을 모으고 "이타다키마스"를 외치는 행위는, "이제 당신(생명)의 영역을 넘어 내 몸으로 취하겠으니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는 일종의 의식이자 요청인 셈입니다.
3. 한국, 일본, 서양이 음식을 대하는 다른 시선
식사 인사의 대상을 비교해 보면 각 문화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 한국의 감사 ➔ '사람(관계)'을 향한다우리의 "잘 먹겠습니다"는 밥을 차려준 어머니, 음식을 사주는 선배, 요리를 만든 셰프를 향합니다. 즉, 음식을 매개로 한 인간관계가 감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서구·이슬람의 감사 ➔ '신(창조주)'을 향한다기독교의 식사 기도나 이슬람의 "알라의 이름으로"처럼, 풍요로운 음식을 허락한 절대적 존재나 신에게 감사를 바칩니다.
- 일본의 감사 ➔ '사물과 생명(자연)'을 향한다차려준 사람이나 절대자 이전에, 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준 눈앞의 생명 그 자체와 1:1로 교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에게 혼밥할 때 인사를 생략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내 앞에 놓인 생명에 대한 무례이자 민폐(메이와쿠)가 되는 것입니다.
4. 2~3초의 인사가 사람의 인성을 좌우하는 이유
이처럼 깊은 문화적 맥락을 갖고 있다 보니, 현대 일본 사회에서 식사 전 "이타다키마스"를 하느냐 마느냐는 단순한 예의를 넘어 그 사람의 내면과 인성을 평가하는 필터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일본의 연애·결혼 설문조사를 보면, 데이트 상대가 식사 전 인사를 건너뛸 때 정이 떨어진다는 응답이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 아무리 스펙이 좋고 잘생겨도 식탁 위에서 인사를 생략하는 순간,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 혹은 "타인의 희생이나 정성에 감응할 줄 모르는 매마른 감수성을 가진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기 때문입니다.
작은 생명 하나에도 고마움을 표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훗날 파트너나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고마움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라는 불안감을 주기 때문이죠.
이처럼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2~3초의 짧은 행동 속에는 한 사회가 세상을 바라보는 거대한 세계관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오늘 저녁 식탁에 앉으실 때, 눈앞에 놓인 밥상을 잠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한 누군가를 향한 고마움이든, 혹은 오늘 내 식탁에 오르기 위해 제 몫을 다한 수많은 생명과 자연을 향한 미안함이든 상관없습니다. 한 그릇의 무게를 깊이 있게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식사는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참고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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